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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형기

도량형 [度量衡]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물건의 크기나 부피를 판단하기 위하여 나름대로의 계량법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계량법은 인간만이 행하는 문명사회의 척도로서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생존방식이나 지역에 따라 달리 나타났을 것이고 이것은 훗날 도 · 량 · 형이라는 단위로 차이점을 표시하게 되었다.

 

도량형은 길이 · 부피 · 무게 또는 이를 재고 다는 기구들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다. 즉, 길이를 측정하기 위한 자[度], 부피를 측정하는 용기[量], 무게를 다는 저울[衡]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도량형은 비단 길이나 부피 및 무게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물체나 상태의 양을 헤아리기 위하여 사용되는 모든 수단, 또 기준량으로서의 단위도 포함하고 있어서, 오늘날의 계량(計量)이나 계측(計測)의 의미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도량형이 처음으로 사용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사람의 신체 일부를 기준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길이 단위인 촌(寸)은 손가락 한마디를, 척(尺)은 한 뼘을, 보(步)는 한 걸음을 가리키며, 부피 단위인 홉[合]은 한 줌을, 되[升]는 한 움큼을 기준으로 한 것 등이 그러한 예이다. 서양의 경우도 30cm 정도의 길이를 의미하는 푸트(foot)가 사용되기도 하고,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의미하는 큐비트(cubit)라는 단위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인간사회가 발달하면서 통일성과 합리성을 가진 도량형이 요구되었고, 이에 따라 진시황의 예처럼 국가적인 도량형의 통일이 일찍부터 나타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도량형 관련기사로 보아 삼국 훨씬 이전부터 도량형이 통용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들어 청동기시대 유적인 보령 관창리와 익산 관운리의 주거지에서 돌추[石錘]가 확인되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또한 B.C. 1세기 유적인 창원 다호리 1호 무덤에서는 양팔저울[天秤]의 추 4점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도량형기

좌측 이미지 : 돌추[石錘], 보령 관창리 유적, 청동기시대

우측 이미지 : 고리모양추[靑銅環權, 창원 다호리, 초기철기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