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교양문화강좌

회수 강연 제목 강사명 소속 일자
65 스키타이와 신라, 그리고 황금문화 홍진근 국립중앙박물관 2017.05.12


1921년 경주시 노서동의 한 민가 보수과정에서 우연히 금관을 비롯한 화려한 황금유물이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화려한 금관을 비롯한 황금문화의 기원을 찾는 과정에 ‘스키타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스키타이는 기원전 7세기에서 3세기까지 흑해 북안과 북아시아의 초원지대에 생활하였던 유목민족으로, 전사적인 모습과 함께 그들이 남긴 엄청난 양과 화려한 황금문화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기원후 4~5세기에 화려하게 꽃피운 신라의 황금문화와 직접 연결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스키타이 문화로 대표되는 북아시아의 유목문화는 중국의 전국시대부터 한(漢) 대에 걸쳐 오르도스 지방을 중심으로 북아시아와 서역지방을 석권한 흉노제국에 의해 수용되어 중국과 한국, 일본의 청동기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북아시아 혹은 지중해적 요소는 스텝루트를 통한 문화교류의 흔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 특히 4세기에서 6세기까지 마립간시기에 만들어진 대형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에서 북방의 스키토 시베리아계의 문화요소를 가진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어 이들 간의 연관성이 주목된다.



신라의 대표적인 무덤은 돌무지덧널무덤이다. 이 돌무지덧널무덤은 가야 ․ 백제 등 주변지역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신라만의 독특한 무덤이다. 거대한 무덤과 무덤 속에 묻힌 많은 양의 금 은 유물과 토기, 껴묻거리로서 강력한 왕권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무덤들은 금관을 비롯한 많은 유물이 묻혀 있어 신라 왕 또는 왕족의 무덤이라고 추정되나 현재까지 주인공이 밝혀진 것은 없다.



돌무지덧널무덤은 구조와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로서 그 기원을 추정하기도 한다. 돌무지덧널무덤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인 덧널 상부의 돌무지 시설은 고구려 돌무지무덤, 시베리아 알타이지역, 심지어 흑해 연안에 분포하는 무덤과 비슷한데 특히 알타이지역의 무덤은 통나무 덧널의 사용, 돌무지의 외형 등에서 매우 비슷하다. 또한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 금관, 허리띠꾸미개, 동물문양과 상감기법, 유리그릇 등은 북방적이고 서역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말갖춤, 무기 등은 고구려의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돌무지덧널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금관, 귀걸이, 목걸이, 허리띠, 신발 등으로, 이를 착장하면 머리부터 발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황금으로 장식하고 있다. 화려하게 꽃피운 신라의 황금문화는 주변의 국가에서 볼 수 없는 신라만의 특징이며 돌무지덧널무덤의 특징이기도 하다.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에서는 『以瓔珠爲財寶 或以綴衣爲飾 或以縣頸垂耳 不以金銀綿繡爲珍 ; 구슬을 재화나 보배로 여기고 혹은 옷에 매달아 장식하고 혹은 목이나 귀에 매달기도 하지만 금은과 비단은 보배로 여기지 않는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신라 이전의 삼한시대에는 금은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신라에서 금은 언제부터 사용되는가에 대한 역사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재까지의 자료에 의하면 경주 월성로 무덤에서 출토된 금제품으로, 4세기 후반에서 5세기의 어느 시점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신라가 고구려의 도움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 시기로 북방지역과의 교섭을 통해 북방 유목민족의 황금문화가 신라에 들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황금을 통해 볼 때 무덤의 피장자는 머리에는 금관과 귀걸이, 목에는 목걸이, 허리에는 금허리띠와 장식대도, 그리고 발에는 금동신발을 신는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황금으로 장식되었다. 이러한 신라의 황금문화는 주변 국가와 차별화 되는 특징적인 문화였다.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한국의 섬에는 금은이 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눈부신 금은채색이 그 나라에 많이 있으니 이를 고금신라국이라 부른다(……眼炎之金銀彩色 多在其國 是謂栲衾新羅國焉’라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을 미루어 볼 때 고대 일본인의 눈에 비쳐지는 신라는 황금의 나라이며 진귀한 보물이 풍부한 나라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었던 것이다.











서역인의 눈에 비쳐지는 신라인의 모습은 어떠한가? 특히 돌무지덧널무덤에서는 유리, 상감구슬, 장식보검 등 많은 서역적인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 신라와 서역사이에 많은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같은 시기는 아니지만 9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 아랍인에 의해 편찬된 『왕국과 도로총람』에는 ‘중국과 맞은 편에 신라라는 산이 많고 여러 왕들이 지배하는 나라가 있다. 그곳에는 금이 많이 생산되며 기후와 환경이 좋아 많은 이슬람 교도가 정착했다. 주요 산물로는 금, 인삼, 옷감, 안장, 토기, 검 등이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책은 현재까지 밝혀진 신라사회에 대하여 매우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금을 비롯하여 수준 높은 회청색의 도질토기, 황금과 비단으로 장식된 말안장, 금은으로 장식된 고리자루칼, 인삼 등은 신라문화를 특징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처럼 서역에서 본 신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황금으로 꾸민 왕이 있고 말과 마차를 황금으로 꾸민 ‘황금의 나라’이며 매력적이고 신비의 나라였던 것이다.

의견쓰기

비밀번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