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교양문화강좌

회수 강연 제목 강사명 소속 일자
64 황금의나라 신라, 금관총의 비밀 김대환 국립중앙박물관 2016.10.28
황금의 나라, 신라 금관총의 비밀





2013년 7월 3일 국립중앙박물관은 1921년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세고리 자루 큰칼에서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왕명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학계와 일반 대중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 이유는 그 동안 숱한 신라의 왕릉급 무덤을 발굴했으나 무덤 주인공을 알 수 있는 정보는 전무했는데 이사지왕이라는 왕명이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보존처리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특별전을 개최하여 이사지왕 명문과 칼을 일반에게 공개했다. 그리고 금관총에 관한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왕명 발견의 의의 등에 대해 깊이 논의했다. 그러나 학술대회 이후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 중 하나는 금관총의 주인공과 이사지왕의 관계였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금관총 조사가 정식 발굴이 아니라 비전문가에 의해 유물이 급히 수습되는 과정에서 정확한 기록을 남기지 못한 이유에서 생긴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국립중앙박물관은 금관총의 종합 연구를 기획하고 일제강점기 간행된 보고서를 다시 간행하고 정식 발굴을 통해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경주 금관총은 현재 사적 제512호 대릉원 일대 고분군 안에 위치한다. 금관총 발굴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이 공동으로 실시했으며, 2015년 2월 23일부터 7월 24일까지 실시했다. 발굴은 사전에 실시한 지하 물리 탐사와 봉토 측량을 통해 봉토 중심을 추정한 후 기준점으로 삼고, 팔분법으로 조사했다. 금관총은 조사 이전부터 이미 봉토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적석부와 목곽부 역시 많이 훼손되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발굴 결과 무덤 내부가 많이 훼손되었음에도 적석목곽분을 구성하는 주요 구조인 목곽부, 적석부, 봉토부가 부분적으로 조사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연구자는 당시 금관총의 남은 봉토 크기를 남북 36.36m, 동서 15.15m, 높이 6.6m 정도로 판단하고, 축조 당시 봉토 지름은 45m, 높이 약 12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봉토 조사 결과 현재 금관총의 봉토는 1980년대 초에 시행된 고분 공원 조성 당시 크게 변형된 것이 확인되었다. 또 원래 봉토는 대부분 파괴되었고 적석부의 밀봉토와 그 외곽의 봉토 일부만 조사되었고 호석은 확인할 수 없었다. 호석이 확인되지 않아 분명하지 않으나 적석부의 규모를 간접적으로 추정해 볼 때 봉토 직경은 약 40~42m 정도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보고서의 적석부는 단면 반원의 모양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번에 확인된 적석부는 일제강점기 보고서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남쪽 끝과 북쪽 끝의 최대 길이는 20.7m이며, 평면 형태는 모서리를 곡선으로 처리한 말각방형이었다. 적석부 사면은 약 50°경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잔존 높이는 360cm이다. 적석부 상부는 파괴되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황남대총의 사례를 참조한다면 금관총의 적석부는 하단부 한 변이 20m 전후인 말각방형이며, 단면 형태는 약 50°의 경사를 유지하고 있는 사다리꼴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확인한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금관총의 적석부 내부에서 황남대총에서 확인된 목조가구의 흔적을 확인한 점이다. 봉토 서쪽에서 확인된 적석부 사면에서는 세로로 세워진 나무기둥 구멍이 분명하게 확인되었고, 경사면을 따라 버팀목 흔적과 나무기둥과 나무기둥을 가로로 연결한 횡가목 흔적이 발견되었다. 금관총은 적석부를 쌓기 위해 목조가구를 설치하였으며, 목조가구는 수직으로 세운 나무기둥과 그것을 가로로 연결하는 횡가목, 적석부 경사면에 세워진 버팀목으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적석부와 목조가구의 조사 성과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연구자가 확인하지 못한 내용이다.









1921년 금관총을 조사한 결과를 담은 보고서에는 하나의 곽 내부에 관이 배치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번 발굴 조사에서 목곽의 바닥 시설이 확인되었다. 목곽은 동서 길이 7.2m, 남북 길이 6.2m, 깊이 0.4m의 묘광을 판 후, 강돌과 자갈을 깐 구조 위에 축조했다. 묘광 내부를 중심으로 동서 길이 5.2m, 남북 길이 2.6m인 자갈 시설이 확인되었고 그 주변으로 강돌이 채워져 있었다. 강돌은 크게 2개의 공간으로 구분되며, 자갈 쪽은 목곽이 세워진 석단으로 판단되며, 석단 외측의 강돌은 목곽 외부에 적석한 냇돌로 추정된다. 석단을 구성하는 냇돌의 최하단석과 냇돌 사이에는 목질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그 범위는 동서 길이 6.4m, 남북 길이 4.2m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보고자가 확인한 목곽을 내곽으로 보면 그 크기가 이번에 확인된 자갈 시상의 폭과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금관총의 목곽은 길이 5.2m, 폭 2.6m 크기의 내곽과 길이 6.4m, 폭 4.2m의 외곽이 있었던 이중곽 구조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금관총의 부장품은 1921년 유물 수습 당시 대부분 수습되었고 목록이 당시 보고서에 잘 기술되어 있다. 그래서 조사단은 이번 발굴조사에서 당시 수습하지 못한 유물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조사를 진행하였다. 새롭게 확인된 유물 중 흥미로운 것은 유리그릇 편으로 총 3개체의 파편이 출토되었다. 이 중 1점은 일제강점기에 보고된 것의 파편이나 나머지 2점은 보고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금관총에는 기왕에 보고된 2점의 유리그릇 이외에도 2점이 더 부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외에도 이번 조사에서는 가는고리 금 귀걸이 2점(1쌍), 굵은고리 금 귀걸이 1점, 가는고리 금 귀걸이 1점이 새로 발견되었는데, 가는고리 금 귀걸이 2점(1쌍)의 경우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형태이다. 그 뿐만 아니라 명문이 새겨진 칼집 끝 장식도 또 다시 확인되었는데 이사지왕도(尒斯智王刀)와 십(十)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2013년에 발견된 명문과 거의 같지만 도刀라는 글자가 추가로 더 있는 점이 다르다. 이 명문 역시 앞으로 금관총의 주인공과 이사지왕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의견쓰기

비밀번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