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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천마총 출토 문화재의 의의 신대곤 국립중앙박물관 2016.06.03
1.天馬塚 發掘經過

천마총 발굴조사는 경주 역사공원 조성을 위해 실시된 것으로 1973년 4월 6일부터 12월 4일까지 약 8개월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천마총은 대릉원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밑지름 47m, 높이 12.7m 정도의 원형분이다. 발굴결과 대개 5세기말~6세기 전반에 조성된 적석목곽분으로 당시의 문화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재가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2.天馬塚의 構造와 祭儀

고분의 축조는 먼저 기저부 범위 내의 지표면을 정리하고, 구지표를 약 40cm 깊이로 굴착하여 목곽 기저부로 삼았다. 이후에 구지표면 위에 점토와 모래를 혼합하여 판축하고, 목곽내 기저부에는 냇돌을 깔아 바닥으로 사용하였다.

목곽은 동서 6.6m, 남북 4.2m, 높이 2.1m 정도이다. 목곽 내부에는 동서방향으로 목관이 서쪽으로 약간 치우쳐 배치되어 있다. 목관은 길이 2.2m, 너비 80cm이며 그 주위에 굵은 자갈로 너비 50cm, 높이 40cm 정도의 석단(石壇)을 쌓아서 목관을 구분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목관 동쪽변과 부장궤 사이에 너비 50cm 정도의 석단이 있어서 구분되며, 부장궤는 목관의 방향과는 직교되게 남북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고분 축조과정에서 여러차례에 걸쳐 장례 의식을 거행되었다. 그 중에서 목관, 목곽, 봉토 조성과정에서 사용된 부장품이 확인되었고, 봉토 정상부 아래 1.2m 지점에서는 금동제 마구가 일괄로 출토되었다. 목곽 벽면 상부 근처의 적석 중에서 호, 배 등의 토기가 출토되었는데 서남쪽 모서리를 제외한 세 모서리에서도 토기가 출토되었다.

제의에 참여자 들도 피장자와 관련된 원근의 다지역, 다정치권역의 내방자들이 참여하는 사회, 정치적 교류의 장으로도 활용, 왕권승계의 정치적 이벤트로 활용하였다.











3.金屬製 威勢品이 象徵하는 것은 무엇인가?

천마총 금관의 도안은 가장 정형화된 것이며 발전된 형태이다. 정형적 금관 타입의 최성기이면서, 퇴화의 임계점에 와있다. 폭 넓은 대륜과 입식, 현수된 과도한 다량의 곡옥, 비교적 폭 넓은 4단의 수지, 화려와 장엄의 극치이다.

입식의 전체적 도안은 성스러운 나무, 생명수, 우주수, 세계수로서의 나무를 상징하고 있다.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새는, 바로 죽은 자의 영혼을 이 생명의 나무로 안내하는 영혼의 안내자, 매개자로 인식된다.

금속제관에 대한 인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금관은 중앙정부의 최고층의 위세적威勢的 관冠이며, 지방 세력가에게는 금동관을 사여하여 위세의 크기를 차별화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지방지배 수단으로서 금속제관으로 이해하면서도, 금관은 부장용이며, 금동관은 지방 세력가의 실용관이라는 인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금속제관에 대한 위세와 부장에 대한 양자의 기능적 인식의 모순이 상존하고 있다.





4.高句麗 古墳壁畵와 天馬塚 裝飾畵와의 관계는?

백화수피제천마문장니는 1조 2매의 그림이 동일한데 장방형판의 가장지리를 따라가며 일정폭으로 구획하고 그 내부를 연화당초문으로 주색과 흰색으로 채색하였다. 이 문양이 천마가 아닌 기린이라는 설도 있음. 이 문양은 크고 호방한 6세기대 문양의 기풍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측시연화(側視蓮花)의 연엽(蓮葉)의 표현수법은 고구려고분벽화 중 6세기대 무용총의 연화문과 유사. 위의 화염형광배와 관련되는데 5세기말~6세기 초경에 유행하던 문양임.

죽제금동천마문장니 발굴조사 후 두터운 녹으로 인해 잘 모르고 있었던 또 다른 금동제천마문도상이 천마문금동장식죽제장니에 조각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

죽제금동천마문장니는 가볍고 활동적이며 장식적임. 천마는 영혼을 저승으로 안내하는 매개자이며, 영혼의 조력자라고도 함.

이외에도 채화판에 그려진 서조, 기마인물도 등은 신라인의 신선관념을 표현.







5.천마총 칠기漆器 및 채화판彩畵板의 文樣과 起源.

칠기는 부장궤 중에서 주로 출토되었다. 종류로는 칠조, 漆杯, 칠국자, 칠구절판, 칠기장니 등이 있으며, 주로 용기가 많으며 마구 등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칠기는 이미 중국 한대漢代의 낙랑무덤에서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낙랑 칠기의 특징은 역시 용기류가 많으며 이배, 칠반, 칠조 등의 식기와 조리용 국자와 같은 것들이 출토된다. 이외에는 피장자의 성격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는 칠통과 같은 문서보관용 칠제통이 있으며, 여성 화장용의 칠소호, 칠화장구획유개합, 칠붓솔 등도 함께 출토되어, 여성피장자의 치장과 관련되는 생활용 소도구들도 부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천마총 칠이배는 낙랑칠기와 상통하며, 칠기의 연원이 한 대 칠기문화와 연결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칠이배의 형태와 칠기의 짙은 갈색바탕 색감처리, 칠기 표면에 그려진 주색의 문양, 낙랑 이배에서 보이는 명문의 존재 등에서 칠기제작의 방법과 주색칠기의 명문의 존재가 시대를 넘어서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칠이배漆耳杯, 칠배漆杯, 칠개漆蓋 칠조漆鳥의 세트품은 생할용기로서의 내용이 유사하지만, 칠조漆鳥와 칠각배漆角杯의 부장은 신라의 특색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칠조漆鳥는 신라 마립기 이전의 사로국 시기에 주로 제작되던 와질제의 압형토기鴨形土器와 유사하다. 생활용기로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역시 의례용의 칠기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천마총 칠기제작의 연원은 낙랑 한대 칠기제작 기법을 바탕으로 하며, 고구려 고분벽화의 정신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6.新羅 容器類에 보이는 觀念의 交流와 來世觀

천마총출토 용기류에는 금속제와 토제의 용기류가 있음. 금속제용기류는 청동정, 금동합, 철부 등이 있으며 중국이나 고구려로부터의 수입품 또는 신라재지제작품으로 인식됨. 토기류로는 유개고배, 장식문장경호 등이 있으며, 토우와 같이 신라인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임.

금동유개대합과 장식토기에는:용문, 봉황문, 동심능형문, 축조문 등 다양한 도교적, 원시신앙적 문양이 시문되어 있어서 삼국시대 광역적 내세관과 제의문화권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임.





7.遠距離交易과 市場, 珍貴한 보물들!

천마총 피장자 사회의 국제성은 신라사회 당시의 전통 속에 내재되어 있었으며, 현실 속에 먼 나라의 문화 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 전통적 정신세계로는 신앙적 근원이나 도교적 성향, 더불어 불교적 인식까지 범아시아 뿐만아니라 페르시아와 로마지역까지도 유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줌.

금관과 유리용기, 은제과대, 칠기명문배, 백화수피관모와 장니, 식리 등 거의 모든 위세품은 원근간 주변정치체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 발전된 것임. .

천마총 출토 유리용기와 유리옥은 서역 또는 대륙 선진문물과의 교류에 의해 유입된 것으로 신라문화의 국제성을 반영함. 원거리교역과 신라 왕경의 시장 개설은 신라 경주의 인구증가와 수공업 발단을 시사함. 삼국사기에는 경시,삼시,(동시,서시,남시)가 개설되어 보다 효율적인 물산의 유통거래를 위한 제조적 조치가 보임.

이외에도 야광패국자는 오끼나와 해역의 특산물로 신라 마립간기의 광역적 대외활동을 반증한다.





8.被葬者의 地位와 性格은?

신라 고총고분 축조에는 노동력의 동원, 국가 ․ 사회적으로 대규모 토목사업이었던 고분의 축조기획, 고분 조성여건의 확보가 기본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신라 고총고분 피장자의 지위와 능력은 거대한 분구와 진귀한 출토 문화재로 보아 최고위층 무덤으로 인식된다.

천마총 피장자에 대하여는 5세기말 6세기 전반에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 소지왕(479~499년) 또는 지증왕(500~513)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

천마총 피장자와 당시 신라인의 정신세계는 대륙계 내세관과 흐름을 같이 하면서도 신라 재지적 원시신앙이 융합된 차원높은 이상세계를 꿈꾸고 있다. 천마총 출토 문화재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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