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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한국 고대 도성과 사원 양정석 수원대학교 사학과 2013.11.22
1. 사원(寺院)이란

사원의 어원은 상가람마(Samgharama)로 한문으로 승가람마(僧伽藍摩)로 표기되며, 승가란 중(衆)· 람마(藍摩)란 원(園)의 뜻으로 중원, 즉 여러 승려들이 한데 모여 불도를 닦는 곳이다. 여기서 나아가 불교교단을 구성하는 모든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중국인들은 이것을 줄여 가람(伽藍)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사찰(寺刹)로, 다시 사원(寺院)이라는 용어로 변형되어 사용되었다. 한편 이러한 사원은 독특한 배치(配置)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초기의 불교사원은 이러한 경향이 더욱 많아 중요한 건물들, 즉 금당(金堂), 탑(塔), 문(門), 회랑(回廊), 강당(講堂), 경루(經樓), 종루(鐘樓), 승방(僧房) 등의 규모와 상호간의 거리 및 위치 등에서 공간적인 규칙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인도에서는 B.C. 2세기경부터 아잔타(Ajanta) 석굴 같은 석굴사원이 경영됨에 따라 예배 대상인 불사리를 안치한 탑이 있는 탑원과 승려의 수도처인 승원은 서로 그 장소와 방향을 구별하여 배치되었다. 이후 이들 탑원과 승원이 언제 어디서 합쳐지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중국에 이르러 남북축선상에 주건물과 탑을 배치한 1탑식 가람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이다. 이러한 특징적인 가람배치가 한국에 이르러 남북축선상(南北軸線上)에 남향하여 중문(中門), 탑(塔), 금당(金堂), 강당(講堂)의 순서로 배열되고, 중문과 강당을 잇는 회랑(廻廊)을 설치하여 불탑과 금당을 중심으로 한 성역(聖域)이 마련하는 것이 기본적인 구조로 이해되고 있다.



2. 한국 고대의 대형 사원

한국 고대의 사원을 논의할 때면 다양한 사원이 이야기될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고구려의 정릉사지, 백제의 미륵사지, 그리고 신라의 황룡사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에 종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이를 통해 각기 그 규모나 의미에서 당시 삼국의 중심사찰, 즉 국찰(國刹)이었음이 밝혀졌다.



평양특별시에서 동남쪽 22km 떨어져 있는 역포구역 용산리에 있는 정릉사는 발굴조사 결과 ‘능사(陵寺)’, ‘정릉(定陵)’ 등의 명문기와가 발견되어 명칭이 정해졌는데, 고구려 사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유구가 잘 남아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북한에서는 동명왕릉을 옮겨올 때 함께 지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남북 132.8m, 동서 223m, 총넓이 약 3만㎡에 달하는 사지 안에 8각 탑지를 중심으로 18동의 건물지가 배치되어 있으며, 1탑 3금당식 배치 형식을 보여 준다.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 위치한 미륵사지는 회랑으로 구획된 1탑 1금당식 가람이 좌우로 3개가 같은 방식으로 배치되고 그 북쪽에 강당이 조영되어 마치 3개의 절이 모여 있는 듯한 3원식(三院式)의 구성하고 있다.

한편 경북 경주시 구황동에 위치한 황룡사지는 중문, 탑, 중금당, 강당이 남북으로 배치된 일반적인 가람배치를 바탕으로 중금당의 좌우에 동서금당이 나란히 조영되어 있는 1탑 3금당의 배치구조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삼국의 세 사원은 비슷한 규모에 조금씩 다른 배치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3개의 금당이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들의 성격은 각기 정릉에 부속된 사원, 부도(副都)에 조영된 사원, 도성의 중심 사원으로 차이가 존재한다. 이는 서로가 비교의 대상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구려의 정릉사지와 비교되는 것은 백제의 경우 왕릉으로 생각되는 부여 능산리고분군 아래 조성된 능산리사지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라의 황룡사를 제외하고는 당시 국가의 중심인 도성의 사원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3. 한국 고대 도성의 중심 사원

6세기에 이르면 고구려와 백제는 각기 평양의 장안성과 부여의 사비성으로 도성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신라의 경우는 경주에 가로구획으로 정비된 왕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둘레가 18km에 이르는 고구려의 도성 장안성에 많은 사원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기는 하지만 현재까지는 아직 사원의 형태나 규모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자료는 확보되지 않았다. 다만 주변의 청암리토성에 위치한 금강사지를 통해 당시 고구려 도성의 가람배치구조에 대한 추론이 가능할 뿐이다. 더불어 백제 도성의 중심에 있었던 정림사지의 경우 당시 사비도성내외의 군수리사지, 왕흥사지 등과 비교할 때 규모의 차이를 논하기는 어렵다.



이와는 달리 신라의 황룡사지는 도성 중심에 만들어진 초대형 사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는 신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북위의 낙양성, 그리고 일본의 등원경에서도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사원의 규모는 탑으로 보면 그 크기에서 차이가 존재하지만, 사원의 또 다른 중심구역인 금당의 크기가 당시 궁궐의 정전인 태극전 규모와 동일하다는 점은 기본적으로 같다. 그리고 이들이 도성 내 위치, 그리고 도성계획에 연동된 사원의 규모 등은 상당한 유사점이 확인된다. 따라서 이는 ‘도성내 이중태극전제’라고 명명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왕즉불(王則佛)’이라는 정치적 불교신앙을 당시 추구하고 있었던 시기라는 점도 동일하다. 이는 당시 도성이 하나의 상징체계로 만들어지고 운영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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