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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알기 쉬운 한국의 도자기 한성욱 한국문화유산연구원 2009.11.17
< 알기 쉬운 한국의 도자기 - 한성욱(한국문화유산연구원)>



1. 머 리 말

도자기는 점력을 가지고 있는 바탕 흙(胎土)으로 형태를 만들고 이것을 높은 온도로 구워낸 것이다. 그리고 바탕 흙의 종류와 만드는 과정, 굽는 과정, 굽는 온도, 유약 종류, 무늬와 장식 기법, 제작지, 용도 등에 의하여 다양하게 나누어지는데 일반적으로 도자기를 굽는 온도와 유약의 유무 등으로 토기(土器), 도기(陶器), 석기(火石器), 자기(磁器, 瓷器) 등으로 나눈다.







2. 도자 만들기와 이름

1) 도자의 제작 과정

도자의 제작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정성과 정밀을 요하는 작업으로 대부분 유사한 과정을 거치는데 제토(製土; 水飛)와 성형(成形), 정형(整形), 조각, 장식, 초벌구이, 유약 바르기(施釉), 재벌구이 등 완성품이 되기까지는 60~70여일의 기간에 24~25단계의 공정을 거친다.



2) 도자의 성형 방법

도자기를 만드는 방법은 그 형태와 크기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이 사용된다. 또한 도기를 만드느냐 아니면 자기를 만드느냐에 따라서도 다양한 방법이 있으며 하나의 그릇에 여러 가지 성형방법이 복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 종류 : 빚기(手捏法), 서리기(卷上法), 테쌓기(輪積法), 물레성형(轆轤法), 판상성형(板狀成形), 형압성형(型壓成形)



3) 도자의 이름 붙이기

도자기의 이름을 짓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재질이 무엇이며, 어떤 시문기법으로 어떤 무늬를 넣었는지, 어떤 형상에 어떤 모양으로 만들었는지에 따라 순서에 맞추어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도자기의 이름은 “상감청자” “청화백자” “철화백자” 등 관용적인 용어도 사용하지만 정식적인 이름을 붙일 때는 반드시 재질이 앞에 오도록 하고 있다.





3. 고려청자의 발생과 전개

청자는 철분이 조금 썩인 백토로 만든 형태에 철분이 1~3% 정도 들어 있는 장석질 유약을 입혀 환원염으로 구워낸 것으로 제작 기술이 발전해 가면서 유약과 태토가 안정되고 다양화되어 간다. 10세기 말에서 11세기에 고려도자는 숙련기에 접어들고, 11세기 중엽부터는 섬세하며 부드러운 곡선의 고려적 풍모가 정착되기 시작한다. 특히 12세기 전반은 고려청자 중에서도 순청자가 가장 세련된 시기였다. 12세기 중기에는 비색 유약과 함께 상감기법이 등장하는데 이는 고려 청자가 이룩한 최대의 성과였다.



12세기 후기에는 상감기법이 성숙되고 공예 의장화가 진전되어 그릇 전체를 장식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장식기법의 종류도 상감과 함께 다양해진다. 세계 최초로 산화동(酸化銅)을 사용한 붉은색의 진사(辰砂)기법이 12세기 중기에 창안되고 철화, 퇴화, 철채기법 등 다양한 기법이 서로 응용되고 조화하여 장식기법의 절정을 맞게 된다. 12세기에 절정을 이루었던 청자 발전은 13세기의 대몽항쟁기와 元 간섭기, 왜구의 침략을 거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청자의 종류에는 순청자(純靑瓷), 상감청자(象嵌靑瓷) , 철화청자(鐵畵靑瓷), 화금청자(畵金靑瓷), 퇴화청자(堆花靑瓷), 철채청자(鐵彩靑瓷), 진사채청자(辰砂彩靑瓷), 흑유자(黑釉瓷), 연리문청자(練理文靑瓷) 등이 있다.





4. 조선시대 자기의 전개

조선 시대의 자기는 크게 분청자와 백자로 나뉜다. 물론 상감청자와 백태청유자(白胎靑釉瓷), 흑유자, 도기류 등도 있지만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것은 백자였고 분청자는 조선 전기에 꽃을 피웠다. 조선 초에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자기소(磁器所) 139개소와 도기소(陶器所) 185개소에서 보듯이 도자기의 생산과 수요가 넓게 확산되었다. 이들 소(所)에서 분청자와 백자 등을 생산하였으며 그 질에 따라 상, 중, 하품으로 나누었는데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1467~1468년경 최상품의 백자를 번조하던 경기도 광주(廣州)에 분원(分院)이 설치되었다. 분원 설치 이후 전문적인 백자 제작으로 인해 당시 널리 만들어졌던 분청자는 전반적으로 그 질이 하락되었으며, 분원 이외에는 대부분 지방 수요를 담당하는 지방 가마로 전락하였다.



1) 분청자

고려말과 조선초에는 퇴화된 상감청자류가 전국적으로 생산되고 있었으며 이것이 점차 변모하여 새로운 실용적 형태로 바뀌고, 문양이 기형 전체로 확대되고, 유약의 투명도가 높아진 것을 분청자라고 한다. 15세기 전반에는 상감과 인화분청이 중심을 이루는데 세종대에 다양한 기법이 나타나 크게 발전하며 세조대에 완성된다. 그러나 임진왜란(1592년)를 전후한 시기에 백자에 흡수되어 그 이후에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분청자의 종류에는 상감분청자(象嵌粉靑瓷), 인화분청자(印花粉靑瓷), 조화분청자(彫花粉靑瓷), 박지분청자(剝地粉靑瓷) , 철화분청자(鐵畵粉靑瓷), 귀얄분청자, 덤벙분청자 등이 있다.



2) 백자

백자는 고려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백자 기술은 세종(1418~1450년) 때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으며 청화백자(靑畵白瓷)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1468년 분원 설치 이전에는 고령, 남원, 광주(廣州) 등에서 만든 백자가 왕실에서 사용되었다. 백자의 종류에는 순백자(純白瓷), 상감백자(象嵌白瓷) 청화백자(靑畵白瓷) 철화백자(鐵畵白瓷) 진사백자(辰砂白瓷) 철채(鐵彩)․진사채(辰砂彩)․청화채(靑畵彩) 백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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