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역사와 문화 지명(地名) 유래(由來)

오목천동(梧木川洞)
 
이 지역은 본래 수원부 용복면에 속한 곳이었다. 1914년 4월 1일 일제에 의한 수원군의 동리 명칭 및 구역 변경 때 용복면의 오목천(梧木川), 고사촌(庫舍村, 일명 고사리)을 합쳐 오목천리(梧木川里)라 하여 안용면 관할이 되었다. 해방 이후인 1949년 8월 15일 수원읍 지역이 수원시로 승격되었을 때는 화성군 용복면 오목천리로 편제되었다.
이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5호에 의하여, 수원시로 편입되어 평리, 고색리와 함께 평동에 편제되었다. 오목천이라는 동 이름은, 이 지역을 흐르는 하천이 오목한 곳을 따라 흐르기 때문에 오목내 또는 오목천이라 불리던 것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 전해진다.


건너말·작은말
 

오목천동에 있는 마을이다. 건너말은 오목내 남쪽 들 건너에 있으므로 건너말이라고 하였다.
마을이 작아 작은말이라고도 불렀다.



고금산(古琴山)
 

고금산은 오목천동에 있는 산으로 높이가 86.6m이다. 고사촌(곳집말)의 남동쪽에 있다. 고금산 밑에 마을이 있는데 고금산 마을이라고 한다.



고사촌(庫舍村)·곳집말
 

원래 용복면에 속했으나 오목천과 통합되면서 안용면 오목천리가 되었다. 오목내 동남쪽 물가의 마을로 고금산 북쪽이다. 옛날 수원부의 곳집(창고)이 이 곳에 있었다. 일본의 강제 합병 이후 일본군이 이 곳을 마을내 군수 창고로 썼다. 특히 군량미를 비축하는 양곡 창고로 사용하였다. 주변 사람들은 큰 창고가 있는 마을이라고 고사촌이라고 불렀다. 해방 이후 마을 주민 스스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하여 우리 말인 곳집말로 바꾸어 불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뒷물·뒷몰
 

오목내 북쪽, 즉 뒤쪽에 있는 마을로 뒷편에 우물이 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뒷몰이라고도 불린다.



안산
 

오목천동 산24번지 일대로 큰 산에 둘러싸여 있어서 안산이라고 하였다.



오목 낚시터
 

수원 여자 대학교 초입에 있는 낚시터이다. 이 낚시터 근처에는 임목 육종 연구소가 있다.



이성(李姓)벌
 

이성벌은 뒷물 앞의 들을 말한다. 오목천동 166-1번지 일대로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논을 많이 경작하였다고 하여 이성벌이라고 불렀다.



즘토 마을
 

오목천동 524번지 일대로 토기(질그릇)를 만들었던 마을이다. 즘토 마을은 줄여서 즘이라고도 불렀다.



축산 기술 연구소(축산 시험장)
 

오목천동 562번지에 축산 기술 연구소가 있다. 일제 시대 때 일본인들이 오목천동, 봉담면, 수영리, 동화리, 와우리 등에 150만 평의 목장을 만들어 소·양·말 등을 길렀던 곳이다. 이 곳을 가축 사육 시험장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4·19 이후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정부에 소송을 하여 땅을 되찾았다. 현재 그 땅의 일부만 남아 축산 기술 연구소(축산 시험장)로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