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역사와 문화 지명(地名) 유래(由來)

매탄동(梅灘洞)
 
이 지역은 본래 수원부 장주면에 속한 곳이었다. 1914년 4월 1일 일제에 의한 수원군의 동리 명칭 및 구역 변경 때 매탄과 산남리를 합하여 ‘매탄리’라 하여 태장면 관할이 되었다.
해방 이후인 1949년 8월 15일 수원읍 지역이 수원시로 승격되었을 때는 화성군 태장면으로 편제되었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5호에 의하여, 수원시로 편입되어 원천리와 함께 매원동(梅遠洞) 관할이 되었다. 이후 1985년 12월 2일 수원시 조례 제1297호에 의하여 매원동이 매탄동과 원천동으로 분리되었다.


1988년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권선구에 편성되었다. 매탄동은 1990년 1월 1일 수원시 조례 제1607호에 의하여 매탄 1동과 매탄 2동으로 분동되었고, 1990년 12월 7일 수원시 조례 제1672호에 의하여 다시 매탄 2동이 매탄2동과 매탄3동으로 분리되었다. 1993년 팔달구가 생기면서 팔달구에 편성되었고, 1994년 7월 16일 수원시 조례 제1898호로 매탄2동을 매탄2동과 매탄4동으로 분동하였다.


매탄(梅灘)이라는 동 이름은 매여울에서 비롯된 것이라 전한다. 매교동과 매탄동 경계에 있는 매봉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흐르다가 이 지역에서 여울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매여울이라 불리던 것이, 한자어로 표기되어 매탄이라 되었다는 것이다. 매탄1, 2, 4동의 경우 관할하고 있는 법정동이 없으나, 매탄3동의 경우에는 신동과 망포동 등의 두 법정동이 포함된다.


배나무골
 

매탄1동 908번지 일대를 일컫던 옛 이름이다. 현재 동수원 초등학교 인근의 매탄 주공 아파트 4단지와 5단지 일대를 말한다. 이 곳은 예전에는 배나무가 많았던 과수원 지역이어서 이러한 이름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가마니골·가맹골
 

매탄1동 168­1번지 일대 마을의 옛 이름이다. 현재 성신 아파트 북서쪽 지역이었다고 한다. 「가마니골」이라는 이름은 옛날 벼를 추수해서 담아 놓는 가마니들이 이 마을 곳곳에 쌓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와는 달리, 토질이 좋은 고래실 논이 넓게 펼쳐져 있어, 풍족하게 농사를 짓는 마을이기에「가마니골」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관터
 

남부 경찰서 주변에 있었던 옛 관청 터이다. 옛날 관청이 있었던 터라 하여 지금도 여전히 「관터」라 불린다. 공교롭게도 지금은 남부 경찰서가 그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남부경찰서를 지을 당시 옛 관청의 주춧돌이 상당수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가만리(家萬里)
 

매탄1동 전 지역을 일컫는 마을 이름이다. 옛날 어떤 지관(地官)이 현재의 매탄1동 지역을 보고는, 이곳에는 훗날 만호(萬戶)가 사는 집들이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한 이후로 「집이 만호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의「가만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 예언자의 말대로 현재 매탄 주공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어 만호 이상의 주택지를 형성하고 있다.



동 약수터
 

매탄1동 76번지에 있는 약수터이다. 낮은 동네 야산에 자리잡은 동사무소 뒤편에 정자와 함께 약수터가 마련되어 있는데, 동사무소 뒤편에 있다고 해서 「동 약수터」라는 이름이 붙었다.



주막거리
 

매탄1동 101­16번지 일대를 일컫는 옛 이름이다. 원래 이 지역은 아무 것도 없었던 지역이었는데, 말이 쉬었다 가는 역이 자리하면서 하나 둘씩 주막집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거리를 형성하게 되어, 이러한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새터·샛터 마을
 

매탄3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이다. 현재 임광 아파트가 들어선 지역으로,「새터」혹은「샛터 마을」이라고 불리었다. 이 마을에는 중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았다. 중국에서 인천을 통해 유입된 중국인들이 수인선을 타고 이 곳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살았으며, 중국인 공동 묘지 역시 이 곳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중국인의 무덤 모양은 우리와 많이 달라서 작은 삼각꼴의 봉분에다가 양 옆에는 구멍을 뚫어 무덤 안이 보이기도 해서 이국적인 구경거리가 되었다. 중국인들이 많이 살았던 탓으로, 홍성원, 의성원 등의 중국집도 유명했었다고 전해진다.

 
당암(堂岩)·당염
 

매탄3동에 있는 마을이다. 현 태장 초등학교 동쪽 지역이다. 마을에서 섬기던 신당 주변에 바위가 많아서「당암」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당염」이라고도 불리었다.



말머리
 

말머리 매탄3동 삼성 전자 정문 주차장 인근 지역에 있었던 마을이다. 마을 지형이 말의 머리를 닮아서 말머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말통골·마통곡(馬筒谷)·말통구리
 

매탄3동에 있는 마을이다. 삼성 전자 정문 동쪽 경기도 도로 관리 사업소 주변 지역이다.「마통곡」「말통구리」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모두 말과 관련이 있는 이름이라는 데에 공통점이 있다. 실제 이 지역에서 전하는 유래들 역시 말과 관련된 것이 전한다. 그 하나는 옛날 이 마을이 한양으로 가기 위한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이나 한양에 일을 보러 가던 선비들이 말을 타고 통과한다고 해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유래는 옛날 수원 장에 말을 팔러 올 때 하루 전날 이 곳에 머물면서 말을 배불리 먹여서 살찌게 하던 곳이었다는 데서 이러한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아랫 산드래미
 

매탄3동 신매탄 아파트 일대를 일컫던 마을 이름이다. 매탄2동 산남 초등학교 부근에 산드래미 아래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매여울
 

매탄3동 일대를 일컫던 옛 이름이다. 매봉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동쪽으로 흘러 원천천으로 들어가는데, 이 지역을 지나면서 여울이 생겨 근처의 마을을 「매여울」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매탄동(梅灘洞)」이라는 이름은 바로 이「매여울」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다.



신매탄(新梅灘)
 

편의상 매탄 주공 1단지와 구분하여 나중에 생긴 매탄4동을 신매탄, 주공 1단지를 구매탄으로 명명한 것이, 일반적인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산드래미·산드레미·산남동(山南洞)
 

매원 중학교 동쪽 길 건너에 있었던 마을이다. 원래 매탄동 지역의 중심 마을이었다. 「산드래미」또는「산드레미」라는 이름은 마을이 자리잡은 자연 환경에 관련하여 붙여진 것이다. 즉 광교산과 연결이 된 매봉 둘레에 병풍을 두른듯이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남동」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은 도시 개발로 인하여 산은 없어지고 주변은 현대식 건물들이 세워져 있어, 산드래미라는 마을 이름이 무색할 정도이다. 이에 마을 토박이들이 옛 마을이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1994년 12월 20일 향토회(鄕土會)의 이름으로‘산드래미 기적비(紀績碑)’를 건립하여 선조(先祖)들의 영령을 위로하고 후손들에게 선조의 유지를 이어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산드래미 기적비의 내용을 보면, 산드래미 마을의 역사가 자세하게 나와 있다.



 
용오철 고개· 용화출 고개
 

매탄동 1177번지에 있는 고개이다. 현 임광 아파트 남쪽 지역이다. 이 고개에서 용이 나와 우물을 거쳐 승천했기 때문에「용오철 고개」또는「용화출 고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현재 도로가 나면서 평평하게 되었다.



뒷고래·뒷고을·뒷골
 

현재 매탄 공원이 있는 낮은 야산 뒤쪽에 있었던 마을이다. 과수원이 많았던 마을로서,「뒷고을」,「뒷골」등으로도 불리었다. 이러한 마을 이름들은, 그 위치가 야산 뒤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참새골
 

매탄4동 205­32번지 공원 지역을 말한다. 본래 샘물이 나오는 곳이어서「참새골」이라 불리던 것이 변하여 참새골이 되었다고 한다. 샘물이 나오던 곳은 이제 약수터가 되었는데, 참새골 약수터라 불린다.



함봉재·민살로 고개 ·함봉재 성황당
 

매탄 4동 810번지 일대에 있었던 고개이다. 70년대 중반까지 있었던 고개로, 우마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조그만 고개였다고 한다. 함봉재 또는 민살로 고개라고 불린다. 현재는 삼성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없어 졌다. 이 고개를 넘어가는 길목에는 성황당도 있어서, 함봉재 성황당 이라 불리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