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역사와 문화 지명(地名) 유래(由來)

입북동(笠北洞)
 
이 지역은 본래 광주군 월곡면 지역으로서, 갓뫼[笠山] 뒤에 위치한 지역이기에 갓뒤 또는 입북이라 불리었다. 1895년(고종 32년) 안산군에 편입되어 월곡면 입북리가 되었다가, 1914년 4월 1일 일제에 의한 수원군의 동리 명칭 및 구역 변경 때 수원군 반월면 입북리가 되었다. 해방 이후인 1949년 8월 15일 수원읍 지역이 수원시로 승격되었을 때는 화성군 반월면 입북리로 편제되었다.
이 지역이 수원시로 편입된 것은 1994년 12월 26일 대통령령 제14434호에 의해서이다. 이 때 반월면 입북리와 당수리가 수원시에 편입되었고, 현재 당수동과 함께 행정동 입북동을 이루는 법정동이 되었다.


갓띠뿌리·방아 다리·주막 다리
 

입북동에 있는 갓띠뿌리는 갓띠의 아래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방아 다리는 옛날에 방앗간이 있었던 곳이어서 붙은 이름이었으며, 주막 거리는 옛날에 주막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었다. 이 세 이름은 모두 같은 장소를 말하는데, 현재 형제 주유소와 서수원 변전소 사이를 말한다.



염수골 뜰
 

염수골 뜰은 지금의 성균관 대학교 식물원의 뜰을 말한다.



오룡골[五龍谷]
 

오룡골은 당진개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흩어져 있는 여러 마을이 칠보산과 이어져 있는데, 그 이어진 지형이 마치 다섯 용이 구슬을 다투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입북리(笠北里)
 

입북리는 갓띠라고도 불렀다. 갓띠의 유래는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먼저 이 곳 마을의 지형이나 지세가 북쪽으로 삿갓[笠, 삿갓 립]을 쓴 모양과 같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 옛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가 이 곳에서 용변을 보던 중 갑자기 나타난 한 여인을 보고 당황한 나머지 삿갓으로 변을 덮고 북쪽으로 도망가 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세 번째로 옛날 3통, 즉 벌말 지역에서 갓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었던 갓띠풀이 많았는데 그 곳의 북쪽이라 하여 입북리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모두 삿갓, 갓띠풀, 북쪽과 연관되어 입북 또는 갓띠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입북리에는 대입북(큰 갓띠)와 소입북(작은 갓띠) 마을이 있다. 대입북은 현재 입북 1통 지역인데 이 지역의 자연 마을 가운데 가장 먼저 형성되었고, 마을 또한 가장 크다. 소입북은 현재 입북 2통·7통 지역으로 옛날에 가구 수가 작은 마을이었다.



봉지뜰
 

봉지뜰은 대입북과 소입북 사이의 뜰을 말한다. 의왕­고색간 도로 너머 대입북과의 사이에 있다.



사낙골·산악골(山岳谷)
 

사낙골 또는 산악골은 입북동 산 28번지 일대에 있었던 마을이다. 작은 갓띠(소입북)와 강짓말 사이에 있었다. 이 마을은 광주촌에 살던 사람들이 도둑이 자주 출몰해 살기가 힘들게 되자 이 곳으로 옮겨와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 마을로 옮겨오니, 이번에는 거지가 많아 마을 사람들의 고민거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스님이 시주를 왔다. 마을 사람들은 가뜩이나 거지가 많아 먹고살기가 힘든데 스님까지 시주를 왔다고 박대를 했다. 그러면서 스님보고 거지나 없애 달라고 말했다. 스님은 괘씸한 생각이 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마을 뒷산의 산허리를 끊어 놓으면 거지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스님의 말대로 뒷산의 허리를 끊었다. 그러자 정말 거지가 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길손들의 발길마저 끊겨 버렸다. 이렇게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자 마을에도 폐가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마을 전체가 폐허가 되고 말았다. 그 뒷산의 허리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인맥(人脈)’이었던 것이다. 인맥이 끊어지자 사람들의 왕래가 끊어지고 후손이 끊기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다시 현재의 율천동 밤밭 마을로 옮겨가 살게 되었다. 이 때부터 마을 사람들의 삶은 생기를 되찾았고, 자손도 번창해 잘 살게 되었다고 한다.



신선 거리
 

입북 6통 마을 회관 앞뜰을 신선 거리라 불렀다. 이는 마을의 지형 지세가 신선들이 노는 형상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