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역사와 문화 지명(地名) 유래(由來)

호매실동(好梅實洞)
 
이 지역은 본래 수원부 매곡면에 속한 곳이었다. 1914년 4월 1일 일제에 의한 수원군의 동리 명칭 및 구역 변경 때 매곡면의 호매실과 자목리를 합쳐 호매실리라 하여 매송면 관할이 되었다. 1949년 8월 15일 수원읍 지역이 수원시로 승격되었을 때는 화성군 매송면으로 편제되었다.
이 지역이 수원시로 편입된 것은 1987년 1월 1일 대통령령 제12007호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같은 날 수원시 조례 제1357호에 의하여 호매실리 1∼4리는 서둔동, 5리는 평동 관할이 되었다. 1991년 9월 5일 수원시 조례 제1751호에 의하여 행정동 서둔동에서 구운동이 분리됨에 따라 호매실동 일원은 구운동 관할의 법정동이 되었다.


느티나무·큰우물 자리
 

호매실동 409번지에는 수령은 확실치 않으나
약 200년 이상된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나무밑에 우물이 있어서 큰우물 자리라고도 하였다.

군웅당
 

호매실동에 있는 당이다. 원호매실은 호매실의 원래 마을로 아주 오래된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당이 있어 평상시에도 영험이 있는 군웅 할아버지에게 개인적으로 소원을 빌러 간다. 이 곳의 당주에게 찾아가 부탁을 하면 대신 빌어 주기도 한다. 신격을‘최서방네 군웅’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최씨네가 과거를 보러 가다가 이 곳에서 말 발굽이 붙어 움직이지 못하자, 내려서 신을 모시고 갔더니 과거에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래서 최씨네가 어디에 가려고 하면 반드시 그 곳에 제사를 지내고 갔다고 한다.


그들은 지금 모두 타지로 떠났지만 최초로 이 곳에 들어와 살았던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점에서 군웅은 산신의 성격은 물론 경상도 지방의 골맥이와 유사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 곳에서 빌어서 아기를 낳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 곳의 제당은‘군웅당’이라고 불리며, 신격은 군웅 할머니, 군웅 할아버지로 칭한다. 이들은 산신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당 내부에는 한지를 접어 천장을 가로질러 매달아둔 줄에 걸어두고 군웅 할아버지, 군웅 할머니로 모신다.


그리고 종이 상자 속에는 두 분의 옷이 들어 있는데, 제사 때 꺼내 걸어두며, 매년 봄이 되면 옷을 살펴 낡았을 때는 새 옷을 마련한다. 항상 당을 맡아 보살피는 당주가 있어서 달마다 초 하루에 북어, 정화수 등 간단히 제물을 차려 놓고 제를 올리고 있다.
마을 제사는 음력 10월에 동네 회의에서 날을 잡아 제관을 뽑는다. 대동회에서 쌀, 돈 등을 성의껏 내서 제의 경비로 마련한다. 제사 때에는 당에 금줄을 치며 깨끗하지 않은 사람은 벌을 받을까봐 스스로 참석하지 않는다. 그 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참석한다. 제물은 보통 제사 때처럼 술, 적, 배, 사과 등과 함께 소머리, 시루떡 6말, 북어 5마리로 마련한다. 아침에 제사를 지낸 후 모두 함께 음복하면서 풍물을 치며 춤추고 놀다가 저녁쯤 내려온다. 동네 사람들은 이날 하루를 동네 잔치로 즐기고 있다.



능골 호매실동
 

1010번지 일대를 말한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 세자의 능 자리를 고를 때 당시 지관이 호매실동 1010번지에 터를 잡았다. 그런데 마침 새 한 마리가 날아가며 “십오리, 십오리”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 곳에서 십오리를 더갔더니 지금의 화산 능 자리였다고 한다. 능 자리를 잡게 해준 골짜기라하여 능골이라고 하였다.



호매실동 가리미 마을
 

호매실동은 원래 수원군 매곡면 호매실이었다. 1914년 매곡면의 호매실(好梅實), 자목리(自木里), 가리미(加里未), 노루미(老樓未),두마미(斗馬未)를 통합하여 호매실리라 해서 매송면에 편입되었다. 1987년 수원시에 편입되어 호매실동이 되었다. 그러나 주민의 편의를 위하여 호매실 남쪽에 있는 가리미 마을은 평동에 속하고, 다른 마을은 구운동에 속하게 되었다.



  동지(東池) 우물
 

호매실동 424-2호에 있다. 노림리 동쪽 옛 마을에 생활 용수를 대어주던 우물을 동지 우물이라고 하였다. 예전에는 지적도상에 물 길러다니던 도로가 표시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도로신설로 흔적이 없다. 칠보 천주교 성당에서 약 150m지점에 있다.



두암 마을·말 바위
 

두암(斗巖) 마을은 호매실 북쪽 마을로 예전에는 모마골이라고 불렀다. 마을 어귀 산 기슭에 말(斗)처럼 생긴 큰 바위가 2개 있어서 두암 마을이라고 하였다. 이 바위의 모습이 처음에는 말을 먹이는 구유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말 바위라고 불렀다. 그런데 어느날 한 석수 장이가 이 바위를 깨려고 하자 천둥 번개가 내리쳐 바위가 엎어지고 말았다. 현재는 말구유가 엎어진 모양을 하고 있다.



안개 바위
 

호매실동 산 15-1번지에 있다. 옛날 일기 예보가 없던 시절에 이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 부근의 안개(구름) 모양에 따라 날씨를 알 수 있어서 농사를 짓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바위를 안개 바위라 하였다.



자목(自木)·자라목·자목리
 

호매실동의 자목 마을을 두르고 있는 칠보산의 지형이 마치 자라목 같다고 하여, 그 아랫 마을을 자목, 자라목, 자목리라 하였다. 용화사가 위치하여 있는 마을이다.



잿상 바위
 

칠보산 중턱 물탕에 위치한 약수터이다. 전설에 의하면 조막손이가 이 약수를 먹고 손이 펴졌다 하여 조막손이 약수터라고도 부른다. 부정한 사람이 오면 약수가 흐르지 않았다고 한다. 50~60년대에는 음력 3월 3일에서 9월 9일까지 이 약수로 밥을 지어 먹으면 좋다고 하여 약수터를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효자문
 

호매실동 402-62번지에 효자문이 있다. 효자문은 한의리(韓義履)의 효성을 알게 된 고종 임금이 내린 것이라고 한다. 효자 한의리는 다섯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머니에 대한 효행심이 지극하여 이웃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갑자기 병환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좋다는 약은 모두 구해와 정성껏 치료하였으나 병은 조금도 회복되지 않고 점점 깊어져 의식을 되찾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 때 어떤 사람으로부터 인육(人肉)이 제일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허벅지 살을 잘라서 어머니께 봉양하였다. 그리고 날마다 깨끗이 목욕을 하고 어머니의 병환이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어머니의 병환은 점차 차도가 있어 완쾌되었다. 그 후 3년 동안 건강한 몸으로 지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다시 병석에 눕게 되어 의식불명으로 운명 직전에 이르렀다. 생각 끝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흐르는 피를 어머니의 입에 들어가게 하였다.


어머니는 조금씩 생기가 나고 기억력을 되찾아, 사흘을 더 사신 뒤 운명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부모에 대한 효행에 크게 감탄하였고, 고종도 효행을 찬양하는 큰 잔치를 열어 주고 효자문을 내렸다. 단자문과 효자각도 세우고 표창장도 수여하였다. 효자 한의리가 죽은 후 효자문과 효자각을 친산 묘소 옆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노림(老林)·노리미
 

마을·장송골 노림은 노리미 마을이라고 하며 호매실동 두암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뒷산에 크고 오래된 장송과 고목이 우거져 붙여진 이름이다. 장송골이라고도 한다.


수금 제언(水今堤堰)
 

『수원부읍지』 제언에 따르면 호매절면(好梅節面)에 둘레 461척, 깊이 1척의 수금 제언이 있다고 하였다. 옛 수원부 치지로부터 서쪽으로 20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호매실동 부근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리골·술이골
 

호매실동 산 5번지 일대를 말한다. 옛날 이 골짜기에서 연자매(돌로 만든 방아)를 만든 후 큰 술자리를 벌였다고 한다. 술을 마신 골짜기라 수리골 또는 술이골이라 하였다.


집무골·집우골
 

호매실동 700번지에 있는 골짜기다. 옛날 이 곳에 있던 마을이 폭우로 인해 마을 전체가 묻혔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곳을 집무골 또는 집우골이라고 한다.



통 바위
 

통 바위는 8가지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의 바위이다. 말굽쇠 모양의 바위로 덮어 보물을 숨겨 놓았다고 한다. 자목에 살던 박상은이라는 사람이 보물을 찾기 위해 정으로 열 곳을 파고 쐐기를 박아 쪼개려 할 때 뇌성 벽력과 함께 피가 분수같이 솟아 지금까지도 핏자국이 바위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 후 박상은은 병을 시름시름 앓다 죽고 그 가족 6명도 모두 죽었다고 한다. 지금도 통 바위에는 붉은 빛이 있고 두드리면‘통통’소리가 난다고 한다.



호랑 바위
 

호랑 바위는 칠보산에 있는 바위 이름이다. 상촌 마을 칠보산 정상 능선에 위치한 바위로 호랑이 모습을 하고 있어서 호랑 바위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