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역사와 문화 지명(地名) 유래(由來)

곡반정동(谷泮亭洞)
 
이 지역은 본래 수원부 안녕면에 속한 곳이었다. 1899년 발간된 『수원군읍지』를 보면, 안녕면 곡반정(谷磻亭)이라 표기되어 있다. 1914년 4월 1일 일제에 의한 수원군의 동리 명칭 및 구역 변경 때, 그대로 중반정(中泮亭)과 하반정(下泮亭)을 합쳐 곡반정리(谷泮亭里)라 하여 안용면 관할이 되었다. 해방 이후인 1949년 8월 15일 수원읍 지역이 수원시로 승격되었을 때는 화성군 안용면 곡반정리에 편제되었다. 이 지역이 수원시로 편입된 것은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5호에 의해서이다.
이 때 장지리, 평리, 대황교리, 권선리 등과 함께 곡선동 관할이 되었다.


벌터·번터·반터·영덕(永德)
 

벌터 또는 번터, 반터라고 불렀다. 원래 벌터는‘터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 명칭이었다. 그런데 수원유수가 이 곳에서 쉬어 가다가 지명을 물었다. 번(番)터라고 하자 수원유수는 이 곳이 돌의 덕을 보았으니 번지 번(番)자에 돌 석(石)을 붙여 돌 반(磻)자가 되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 곳이 냇가이기 때문에 돌 반(磻) 대신 시내 반(潘)의 의미로 바꿔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반터란 이름이 생겼다. 벌터 마을은 영덕이라고도 불렀다. 그 까닭은 이 동네를 둘러싸고 많은 돌들이 있었는데, 홍수가 나도 돌 때문에 마을이 홍수에 휩쓸리지 않았다. 그러므로‘이 마을은 돌에 의해 영원히 덕을 얻을 것이다’라는 의미로 영덕이라고 지어졌다고 한다. 벌터 마을은 영동 아파트를 못가서부터 아모레 화장품 일대까지이다.


새말(신촌:新村)과 우시장
 

골반정 남서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다. 일제 말기 아래버드내(장지동)에 살던 사람들이 그 곳에 수원 비행장이 생기자 집단으로 옮겨 새로운 마을을 형성하였으므로 생긴 지명이다. 이 곳에 있는 우시장은 근래에 형성된 우시장이다. 원래 전국적으로 유명한 우시장은 수원면 북수리에 있었다. 우시장은 전국에 655개가 있었는데, 경기 도내에 47개소가 있었다. 수원의 우시장은 조선 후기 이래 전국에서 이름난 곳이었다.


장날이면 각지에서 소장수와 농민들이 모여들어 언제나 성시를 이루었고, 1년 거래량이 2만 두 이상이었다.
수원의 우시장이 이렇게 유명했던 까닭은 정조의 새도시 육성책과 관계가 깊다. 정조는 화성을 축성하고 수원을 자립 기반을 갖춘 도시로 육성하기 위하여 둔전을 경영하였다. 그리고 둔전에서 농사를 잘 짓도록 농민들에게 종자와 소를 나누어 주었다. 수확기가 되면 수확의 절반을 거둬들이고, 소는 잘 키워 3년에 한 마리씩 갚도록 했다. 점차 늘어난 소를 팔기 위한 장소가 필요하였고 자연스럽게 우시장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수원은 소가 풍부하게 공급되었고 이것이 이어 내려와 지금까지도 수원 갈비의 명성은 유명하다. 수원의 우시장은 일반 시장과 함께 섰다.


성내(城內) 시장은 10일 간격으로 음력 9일, 19일, 29일 열렸고, 성외(城外) 시장은 음력 4일, 14일, 24일에 열려 전체적으로 보면 5일장이 서는 셈이었다. 수원 시장의 성황은 우시장이 활기를 띠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좌우되었다. 소의 거래는 다른 어떤 물품의 거래보다 많은 돈이 오고 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시장의 성황은 수원 지방에서 상품 교역이 늘어나는 한 요인이 되었다. 수원은 농업 도시뿐만 아니라 상업 도시로서도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십이반정
 

곡반정동의 열두 마을을 합쳐 십이반정이라고 하였다. 즉 벌터 마을, 온수골, 궁촌, 상고렴, 하고렴, 곡반정 5통·6통, 우시장 앞동네, 구 산업 도로 윗동네, 반야(또는 야반)의 두 동네, 영덕을 말한다.


온수골[溫水谷]
 

궁말 북동쪽 위에 있었던 마을로 지금의 중앙 양로원 뒷편이다(제보자마다 그 위치가 조금씩 다르다). 옛날에 더운물이 나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44년 7월 29­2번지 일대에서 29℃의 온천수가 나와 경기도에 신고되었는데, 지금도 온천 탐색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갈촌
 

마을 주변에 자갈이 많아서 자갈촌이라고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와 살게 된 마을이라 하여 자활촌(自活村)이라고 하였는데 그 음이 변하여 자갈촌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렴(古廉)·상고렴·하고렴
 

곡반정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염씨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반남 박씨가 많이 살고 있다. 물맛이 좋은 마을이라고 하며 지금도 지하수를 많이 쓰고 있다. 윗쪽(북쪽)에 있는 마을을 상고렴, 아래쪽(남쪽)에 있는 마을을 하고렴이라고 한다. 또 다른 유래로는, 수원 유수가 이 지역 순시 중 가을의 단풍이 아름다워 높을 고(高), 염색할 염(染)을 써 고렴이라고 부르려고 하였다. 그러나 연중 한 계절 밖에 상징하지 못한다 하여 오래 고(古), 생각 념(念)을 써서 고렴(古念)이라고 했다는 말도 전해오고 있다.


곡반정(谷泮亭)·골반정
 

수원시 동남부에 위치한 마을로 반정리 서쪽 골짜기에 있어서 곡반정, 골반정이라 하였다. 지명으로 보아 반정이란 정자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원천천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얼음처럼 차서 선비들이 이 곳에 정자를 짓고 그 물을 즐기며 쉬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곡반정에 대한 또 다른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수원 유수가 지역 순시 중 이 곳에 들른 이곳에 와서 물을 마셨는데, 그 물맛이 온수골과 달리 매우 시원하였다.


그래서 반(半)에 물 수(水)자를 붙여 얼음 녹을 반(泮)을 짓고, 정(井)에도 물 수(水)를 붙여 얼음물 괼 정(정)자를 지은 후 반정(泮정)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 곳은 쉬어갈 수 있어서 정(정)자 보다는 정자 정(亭)자를 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여 반정(泮亭)이라고 고쳐지었다. 그리고 여기에 온수곡의 곡(谷)자를 붙여 곡반정(谷泮亭)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윗반정[上泮亭]과 아랫 반정[下泮亭]은 화성군 태안읍 반정리 위쪽과 아래쪽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궁말·궁촌
 

곡반정동 명당골의 북동쪽 마을로 옛날에 활터가 있어서 궁(弓)말이라고 하였다. 또 다른 유래로는, 수원 유수가 지역 순시 중 이 마을에 와서 너무나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고 궁촌(窮村)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명당골
 

현재 안용 초등학교 자리는 예로부터 명당 자리여서 병이나 화가 들지 않는다고 명당골이라고 불렀다. 또 다른 유래는, 이 곳이 원래 인가가 없고 밭과 들만 있었던 곳인데 차츰 사람들이 모여 집을 지은 후 살다 보니 넓고 좋았다. 그 후 사람들이 점점 이 곳으로 많이 이주해 왔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잘 살게 되니 명당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곳을 명당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