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역사와 문화 지명(地名) 유래(由來)

대황교동(大皇橋洞)
 
이 지역은 본래 수원부 안녕면에 속한 곳이었다. 1914년 4월 1일 일제에 의한 수원군의 동리 명칭 및 구역 변경 때, 대황교(大皇橋)와 간촌을 합쳐 대황교리(大皇橋里)라 하여 안용면에 편제되었다. 해방 이후인 1949년 8월 15일 수원읍 지역이 수원시로 승격되었을 때는 화성군 안용면 대황교리에 편제되었다. 이 지역이 수원시에 편입된 것은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5호에 의해서이다.


대황교(大皇橋)·대황교동
 

『수원군읍지』의 필로에 따르면 황교는 화성 유수부 남쪽 15리 안녕면 하유천에서 백여 보 떨어진 길 동편에 황교라고 새긴 표석이 있다고 하였다. 처음 이름은 소황교(小皇橋)였는데, 1795년(정조 19) 대황교로 고쳤다. 조그만 정자도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대황교 다리가 있는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대황교동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수원 비행장 확장 공사로 1970년에 이 돌다리와 표석을 화산 융릉 입구에 옮겨 놓았다. 옛날 정조가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에 다니던 길, 즉 수원부에서 윗 버드내, 아래 버드내를 지나 더 내려가면 황구지천을 이루는 두 줄기 지류가 한데 모여지는 곳에 돌다리로 된 대황교가 있었다. 원래 이 다리는 얕게 놓아져 있었는데, 당시 삼남 지방(三南地方)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대황교가 있는 이 길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번잡한 1번 국도이다. 그래서 그 옆에 크게 다리를 놓은 뒤로 대황교는 쓸모 없는 다리가 되었다. 그 때부터 비바람에 허물어지고 수해를 입어 그 유명한 다리가 몹시 흉하게 되었다. 다행히 이 돌다리를 모두 옮겨 융릉 바로 입구에 다시 놓음으로서 본연의 형태를 일부나마 재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