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역사와 문화 수원(水原)의 어원(語原)

수원이란 지명의 유래는 본래 내륙이 아닌 바닷가 갯마을에서 비롯되었다. 2천여년 전의 현 화성군의 서쪽은 대부분 바다였으리라 짐작된다.
화성과 수원은 그 지형이 낮은 야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본래 바닷물로 출렁거렸을 이 지역에 차츰 물이 빠져나가면서 작은 섬들은 산으로, 그리고 깊은 곳은 지금처럼 호수나 웅덩이로 변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즈음 온통 물나라(水國)로 보였을 포구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마을이 점점 커져서 오늘의 수원이란 지명을 형성하게 되었을 것이다.


흔히 수원을 말할 때 그 시발지로서 삼한 시대의 모수국(牟水國)을 떠올리곤 한다.
중국의 사서 『삼국지』「위지 동이전」(三國志 魏志 東夷傳) 상(上)에 나오는, 마한 50여국 중의 하나인 모수국(牟水國)이 옳다면 모수(牟水)는 화성군 중에서도 바다에 연한 남양면이나 송산면 아니면 서신면 쯤이 되리라 추정한다.
모수국(牟水國)의 정확한 고유어 발음은 재구할 수 없으나 대체로 물이 많은 곳, 곧 물나라란 뜻으로 쓰인 것 같다. 모수국(牟水(國)의 국(國)은 지금처럼 국가 개념의 나라가 아니라 부족 국가 시대에 한 부족이 모여 살던 집단 마을을 지칭한 것이다.


수원은 5세기 말엽 고구려가 점령하고 있던 시절부터 신라 통일까지 매홀(買忽)이라 불렀는데 통일신라
경덕왕대(757년) 이르러 수성군(水城郡)으로 개칭되고 다시 고려 때는 수주(水州)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여기서 성(城)이나 군(郡) 또는 홀(忽)과 주(州)는 행정 구분에 따른 지명 접미어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명의 핵심인「수(水)」와 「매(買)」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매(買)는 발음상 물(水)과 관련된 어사임이 틀림 없어 보인다. 우리말을 기록할 수 있는 고유문자가 없던 시절,
한자의 음과 뜻을 빌어 고유명사를 표기한 차자표기법이다.
한편 매홀(買忽)의 忽은「홀」로 읽히는 한자지만 표기 당시에는「골」로 읽혔으리라 짐작된다.
따라서 매홀(買忽)은 당시「(매)골」또는 「미골」로 발음되었으리라 추정하는 것이다.


수원(水原)의 위치(位置)와 지형(地形)

수원시는 수도 서울에서 남쪽으로 40.7㎞가 되는 경기도 중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용인시 수지면 (水枝面) 및 기흥읍(器興邑)에, 서쪽은 안산시와 화성군 매송면(梅松面), 남쪽은 화성군 태안읍(台安邑)과 북쪽으로 의왕시(儀旺市)에 접해 있다.
수원시의 동단(東端)의 극점은 동경 127도 05분인 팔달구(八達區) 하동이고, 서단의 극점은 동경 126도 56분인 권선구(勸善區) 금곡동으로서 동서간 14.3㎞를 이루며, 남단의 극점은 북위 37도 13분인 권선구 대황교동(大皇橋洞)이고 북단의 극점은 북위 37도 21분인 장안구 상광교동으로 남북간 거리는 13.9㎞를 이룬다.

수원의 지형을 살펴보면 대체로 동북에서 서남 방향으로 향해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북ㆍ동 및 서
3면이 광교산맥에 에워싸이고 남쪽만이 넓은 평야지대로 열려 있어 일종의 계곡 위에 펼쳐진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광교산맥의 주봉인 광교산은 수원시의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광교산 정상의 높이는 해발 582m로서 북쪽의 관악산보다는 47m 정도가 낮지만 산의 용태나 규모를 볼 때 한강 이남 경기도에서는 제일 가는 명산이라 할 수 있다.


광교산맥은 동으로는 성남시를 거쳐 과천의 청계산(淸溪山)에 이어지고, 북으로는 백운산(白雲山)을 이어 광주
(廣州)의 고분현(古分峴)에, 동남으로는 용인시 수지면(水枝面) 일대에, 서쪽으로는 의왕시(儀旺市) 일대의 지맥과 닿아 있다. 또 남으로는 광교산 바로 턱밑에 형제봉을 두고 상광교ㆍ하광교의 두 골짜기를 이루면서 마치 양팔로 수원시를 감싸안은 듯한 형국을 이루고 있다.